사이트정보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통합검색 검색 폼

게시물 (94건)

<光州西倉>, 서구문화원 인문학총서 제1권 발간
설날 전후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다녀갔다. “예전 그대로인데!”, “와, 많이 바뀌었네.”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광주 서구 서창동을 다녀간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마을에 따라 바뀐 모습의 양상이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극락’이다.우리나라에서 ‘극락’이라는 지
박지흥-찬성공 박지흥 묘역
광주시 서구 서창동 산 92 부근(송학산)서창 절골마을의 입향조인 박지흥의 묘소가 있다. 그의 아들이 눌재 박상이며 손자가 사암 박순이다.
사암박순선생신도비명
광주시 광산구박순(1523∼1589)의 신도비인 思庵朴淳先生神道碑銘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하는 데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기록 착오로 경기도 포천 옥병서원 앞에 있는 것을 광산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순은 후손이 없자 양자를 들이지 않고 외동딸이 시집(군수 이희간에게 출가)간 포천에서 은거하
해광송선생지천
광주시 북구 무등로 1040(화암동)이 해광송선생지천(海狂 宋先生支阡)은  《송자대전》과 《해광집》에는 海狂處士宋公墓表로 기록되었고, 이 해광송선생지천은 석곡수원지 위 관광도로 동쪽에 있던 묘비를 옮겼다.호남에는 옛날부터 으뜸가고 위대하며 어질고 뛰어난 선비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세상을 잘못
려헌거사박공기적비
광주시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1983년이 려헌거사박공기적비(藜軒居士朴公紀蹟碑)는 박상호(朴尙鎬)의 기적비이다. 건립 당시에는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 입구에 1983년에 세웠다. 마을 앞에 도로가 나면서 마을 뒤에 있는 공의 묘 앞으로 옮겼다. 그의 셋째 형인 박영호(朴泳鎬)의 유적비도 마을 골목 안에 세워
눌재 박상朴祥(1474~1530)
박상朴祥(1474~1530)은 진사 박지흥의 차남이며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 때의 관료로 사림 운동에 전력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호남 사림의 대부이다.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이다. 눌재는 1474(성종5년)년에 광주 방하동 본가에서 성균관 진사였던 부친 지흥과 모친 계성서씨 사이에
정인서 문화비평13, 광주, 문화콘텐츠를 놓치고 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작가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비판적인 글들을 발표했다. 1974년 2월 시민권 박탈과 강제 추방당했다.소련 붕괴 이후 1994년 20년간의 망명
박효덕-湖南五十縣 호남의 많은 고을 쉰 곳에 이르지만
湖南五十縣  호남의 많은 고을 쉰 곳에 이르지만君子也斯亭  군자가 거한곳은 이 정자 뿐이로다.極浦流如白  극랑강 흐르는 물은 그 빛이 청백하고瑞岑節彼靑  서석산 높은 봉은 그 기운 청청하네.孝思千古篤  효도의 그 생각이 천고에 독실하고忠義一心明  충의의 그 마음이 한없이 밝았도다
신응시-만절정, 사암 박상공을 위해 짓다(晩節亭 爲思庵朴相公作)
一曲溪山萬勝專  한 구비의 시내와 산은 온갖 승경을 독점하였고繞亭松樹政堪憐  정자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는 정녕 사랑스럽다.千章擁翠層雲合  빽빽이 들어선 나무는 푸르름 둘러 높은 구름과 합쳐있고十里聞聲爽籟傳  십리 밖에서 소리 들어도 상쾌한 가락 전한다.不獨大材棟樑用  큰 재목으로
박상-광주향안 서문(光州鄕案序), 訥齋先生續集卷第四
訥齋先生續集卷第四 / 序 金文谷編 吾州之座首金叔讓,別監金敬寶,薛崇。价別監柳子華簡訥齋曰。我朝鮮受命以來。倣周卿大夫之制。州與府與郡與縣與。設留鄕所。以鄕之有職秩名望者補其員。長曰座首。亞曰別監。所所攝之公事。長主之而亞佐之。長不可顓也。亞不可擅也。所以耳目於本官。而司其聞睹焉。又於都下。置之邸
박정-登瑞石山賦
處人世之僻陋 인간 세상 편벽하고 비루한 데 살다보니 動皆窒而不通 움쩍하여도 다 막히고 통하지를 않는다思登高而望遠 높은데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一盪余之愁胸 나의 시름찬 가슴 후련히 씻고 싶어져穿芒鞋而捫薜 짚신을 신고 담장이를 붙들고서陟瑞石之層峯 서석산의 층진 봉우리를 올라가超積蘇而獨立 쌓인 나무 뛰어
박상-遊瑞石山韻 贈鄭萬鍾
昔年曾謫永平官  지난해 남평에 유배되어서無等山雲借登攀  무등산 구름 속을 등반하였지 念佛庵中成邂逅  염불암 안에서 즐거워하고天王峯上與盤桓  천왕봉 꼭대기에 서성거릴제南州五十彈丸小  남쪽오십 고을 탄환처럼 조그맣고 北闕三千咫尺間  한양 삼천리 길 지척으로 여겼었네衰病日加
윤지화(尹之和)
조선 전기의 문신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 1476~1558)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순경(順卿)이다. 현감(縣監) 윤응(尹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봉상시(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尹起畝)이다. 연산군의 외삼촌인 참판(參判) 윤구(尹遘)의 아들이자, 첨정(僉正) 윤지임(尹之任)의 동
정인서 문화비평4. 광주생명문학관을 제안한다
오랫동안 광주문학관 건립을 놓고 설왕설래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2010년 광주시가 용역 의뢰한 ‘용아.다형 문학관 건립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이라는 보고서가 나온 뒤 강운태 시장, 윤장현 시장을 거치면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이번 민선7기 이용섭호의 문화공약 가운데 문학유산 계승 및 문학인들의 창작 지원을 위한
문화도시 얼굴 먹칠하는 詩碑 관리 허술
문학관과 문학공원 하나도 없는 문화도시 광주에 그나마 있는 주요 시비(詩碑·문학비)들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광주지역은 남구 사직공원에 11개의 시비가 있고 광주공원에 영랑과 용아의 시비, 북구 광주문화예술회관 고정희와 정소파, 중외공원에 김남주, 서구 마재근린공원에 정덕채, 광산구
어느 청백리 이야기
청백리淸白吏 이야기는 역사상 청빈한 관리로부터 비롯되곤 하지요. 전라도사全羅道事로 새로 부임해온 조공趙公의 이야기입니다. 조공은 청백리와 무척 연관이 돼 있습니다. 눌재 박상의 후임으로 부임한 조공은 나이에 비해 성품이 칼날같이 예리하고 엄격해 일체의 부조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눌재와 닮
박눌재와 고양이
눌재 박상 하면 고양이 설화가 유명하죠. 이 고양이가 아니었더라면 눌재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고양이를 만나 사약을 모면했다고 하니 눌재에게 고양이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연인즉 눌재 박상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지요. 당시 희대의 폭군이자
박희수
박희수朴希壽(1540~?)는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덕로德老이고, 호는 회헌懷軒이다. 1540년 서창동 절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박상의 손자이고 김해부사 박민제朴敏齊의 아들이다. 회재 박광옥의 문인이며 벼슬은 1577년(선조 10) 음보蔭補로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호남에서 박광옥 고경명과 함께 의병을
박광옥
박광옥朴光玉(1526~1593)은 조선 중엽 명종과 선조 때에 성리학을 연구하고 향약을 널리 실시해 이름을 세우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의기로운 선비이다.박광옥의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 할아버지는 박자회朴子回이고, 아버지는 사예
김홍두
김홍두金弘斗(1879~1933)의 아호는 악포樂浦이며 서창면 용두리 155, 학동마을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이다. 고향 서당에서 글을 배운 후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남달리 애국심이 강하였다. 1910년 강제로 국권이 강탈되자 독립운동을 결심하고,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祺中, 한훈韓焄,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